활동 자료IT 직장 내 괴롭힘, 현장에서 해결책을 찾는다. (직장갑질 119 활동가 인터뷰글)

관리자
2022-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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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직장 내 괴롭힘, 현장에서 해결책을 찾는다

직장갑질119 오진호 활동가 인터뷰

 

저자 : 구로노동자조사그룹 회원 구영완, 김지수, 한영주


 

떠들썩한 대선 정국 속에서도 유독 노동 이슈는 잠잠하기만 하다. 정치권이 주52시간제를 맴도는 사이, 다른 시급한 문제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고만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올해 5월 네이버에서 일하던 한 노동자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몬 직장 내 괴롭힘도 그중 하나다. 사건 이후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이 이루어지면서 폭언과 따돌림이 만연한 IT업계의 현실이 속속 드러났다. 이에 한성숙 전 네이버 대표이사는 국정감사에 출석해 노사 협의를 거쳐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여전히 제대로 된 협의가 도출되지 않고 있어 일각에서는 사측의 미온적인 태도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 있는 모양새다.

 

판교를 중심으로 한 소위 ‘빅테크’ 기업들에서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조명되기 시작한 건 분명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제대로 이슈화되지도 못하고 있는 노동권 취약 지대의 현실이 걱정스럽다. 제대로 된 인사관리 체계가 없는 영세사업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은 신고하기조차 어려울 수밖에 없다. 많은 IT 업체가 밀집돼 있지만 이 중 30인 미만 소기업이 절반(2019년 기준)에 달하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구조적 성격 역시 이러한 우려와 맞닿아 있다. 이곳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구로노동자조사그룹(이하 ‘조사그룹’)은 12월 8일, 직장갑질119의 오진호 활동가를 만나 직장 내 괴롭힘의 현황과 현장의 대응, 또 분절된 노동시장 곳곳의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해결방안에 대한 경험과 고민을 들어보았다. 4년째 직장 내 괴롭힘 근절에 앞장서 오고 있는 그는 직장갑질119를 “촛불 이후 높아진 시민들의 권리의식을 일터로 끌고 오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로 소개했다.

 

 

‘노동권 특별구역’ 취급받는 IT업계

 

Q. IT직장갑질 신고센터에서 8월 한 달간 접수한 사례만 21건에 달한다고 들었어요. 9월 이후 에는 어땠나요?

 

“우선 IT갑질신고센터는 IT공대위,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시민단체 등이 함께 만든 단체인데요. IT공대위 내에서 직장갑질119는 IT갑질신고센터 운영을 맡았어요. IT갑질신고센터는 말머리에 ‘IT’라고 써서 메일을 보내면, IT상담 전문 스태프에게 배정해서 72시간 내에 이메일로 답변받게 하는 신고센터에요. 최근 8월에 IT신고센터 시작하고 대략 1달간 21건이 들어왔고, 이후에도 1주일에 1건씩은 IT 갑질 사례가 들어오는 것 같아요. 특히 판교 중심으로 홍보가 많이 된 듯해요. 그런데 내용을 보면, IT종사자라고 추정되는 메일은 더 있거든요. 그래서 신고 수를 칼같이 나누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일단 정리하자면 주 1건 이상은 신고가 들어온다고 볼 수 있어요.”

 

Q. IT업계의 특성과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심각한 것이 어떤 연관이 있나요?

 

“IT업계의 특성상 성과실적이 중요하고, 변화 속도가 빠르죠.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IT업계를 노동권의 특별구역처럼 만들려는 시도가 있는 것 같아요. IT강국 혹은 온라인 시장에서 경쟁력 등을 얘기하면서 구글 같은 기업을 키워야 한다고 말하는데요. 실제 업계 내의 구성원들이 직원들을 바라보는 인식은 70, 80년대 한국의 가부장적이고 봉건적인 문화 예절에 길들어 있는 거죠. 업무를 쪼고 압박하고 닦달하는 게 성과를 높인다는 구시대적 발상이 있어요. 그런데 이걸 사회적으로 못 하게 되니까 IT업계는 좀 다른 곳인 것처럼, 그런 것들이 합법화되는 곳인 것처럼 만들려 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있는 것 같아요. 현 야당 대선 후보도 120시간 발언하는데요. 개인적인 감수성 문제도 있겠지만, IT업계는 특별구역화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는 듯해요. 이런 문화의 핵심에는 성과주의, 실적주의 이런 것들이 있다고 보여져요.”

 

IT업계의 특징적인 문화는 성과주의, 실적주의가 만연하다는 것이다. 성과를 강하게 요구하는 압박이 만연하고 이에 따른 ‘공짜 야근’ 문제도 심각하다. 이러한 노동조건은 일주일에 1건씩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들어오는 현실을 만들었다. IT업계의 성과주의는 단순히 개인의 성향에 따라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IT 강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명분 아래 구시대적이고 과도하게 경쟁하는 직장 문화를 방치한 사회적 인식도 이러한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직장 내 괴롭힘을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 조사그룹은 오진호 활동가에게 제도적, 실천적 차원의 해결방안을 물어보았다.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Q. IT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접근할 때 조직문화를 개선하고 바꿔나가는 게 특유한 접근 방식이 되겠네요?

 

“IT업계는 특히 중요할 수밖에 없죠. 문화를 바꾸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고 봐요. 첫 번째로는 성과를 구시대적 방식으로 강요하는 게 실제로 성과를 끌어내는지 성찰이 필요하고요. 두 번째로는 괴롭힘으로 피해받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구제하기 위해서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직장 내 괴롭힘 유형에 정당한 이유 없이 실적을 강요하는 행위나 인센티브를 인위적으로 지급하는 행위를 포함하는 등 유형을 쌓는 것이 필요해요. 그리고 괴롭힘이 많이 발생한 기업을 규제한다든가, 혹은 조직문화의 개선을 바라는 기업에 정부가 지원을 해준다든가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죠. 이런 것들을 통해서만 조직문화 개선이 가능할 거라고 봐요.”

 

Q. 직장 내 괴롭힘 문제의 경우 전반적으로 피해자가 신고를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불이익에 대한 우려죠. 괴롭힘을 신고했을 때 회사로부터 인사상이든 어떤 식으로든 불이익당할 거라는 두려움이 가장 커요. 실제로 설문조사를 해보면, 신고 안 한 이유의 25~30%가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에요. 불이익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불이익뿐만이 아니에요. 우리 사회의 문화 중 하나는 신고자를 조직문화 바꾸는 데 이바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신자 보듯이 바라보는 시각들이 있잖아요. ‘쟤 때문에 우리 회사 분위기 안 좋아졌어.’ 같은 분위기요. 이런 문화적인 것들이 포함돼 있을 거로 생각해요. 문화적인 개선이 캠페인만으로 바뀌는 게 아니고 제도 등으로 인식을 바꾸는 게 포함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이후 변화 중 하나는 그래도 입조심 해야 한다는 걸 사람들이 생각하게 했다는 거죠. 신고자에게 불이익을 주면 더 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도록 인식을 바꾸게 하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이를 제도화해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한 사람에게 사용자가 금지해야 하는 불이익 처우를 구체적으로 명시한다든가, 실제 불이익 처우가 벌어졌을 때 노동부가 근로감독이나 행정조치를 통해서 기업에 불이익 준다든가 하는 것들이 많아져야 하겠죠.”

 

오진호 활동가는 이외에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적용 범위를 ▲5인 미만 사업장 ▲파견하청 노동자 ▲프리랜서 ▲공무원으로 확대해 법 보호망의 사각지대를 줄여나가야 함을 강조한다. IT산업의 경우, 종사자 4명 중 3명은 1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할 정도로 작은 사업장이 보편적이다. 또한 ‘IT 보도방’이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IT산업에서 인력파견은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어왔으며 그 안에서 파견하청이나 프리랜서와 같은 비정형 고용 형태도 대거 발생하고 있다. 이를 고려한다면, 5인 미만 사업장을 비롯한 법 적용 범위 확대는 IT산업에서 특히 중요한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IT업계에서 성과를 강요하고 이로 인해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성과주의에 대한 성찰과 함께 인식 변화를 견인할 법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우선 IT산업의 특수성을 반영해 합리적 이유 없이 과도한 실적을 요구하며 업무를 압박하는 행위, 객관적 평가 기준 없이 평가·인센티브·스톡옵션을 차별적으로 지급하는 행위 등과 같은 직장 내 괴롭힘 유형을 추가해야 한다. 그리고 모호한 규정 탓에 협소하게 해석되고 있는 ‘신고 후 불이익’ 역시 유형화가 필요하다. 더불어 오진호 활동가가 강조하듯 직장 내 괴롭힘 법을 실질적으로 집행하는 노동부를 비롯해 행정 부문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법의 최저 수준을 넘어, 직장 내 민주주의로

 

법은 그 자체로 문제를 규정할 언어를 제공하기에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법은 어디까지나 최저 수준일 뿐 그 이상의 노동조건은 노사관계 안에서 만들어진다. 오진호 활동가는 결국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노동자들이 함께 법의 집행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사내 사건 처리 절차가 미흡하지는 않은지 등을 주시하고 개선을 요구해야만 법제적 차원의 노력이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이 어떻게 목소리를 모아 함께 행동할 수 있을까? 직장갑질119는 노동자 연대의 새로운 가능성을 ‘온라인 노조’에서 찾는다. 온라인 노조는 “느슨한 형태의 온라인 모임”으로, 노조 밖 노동자들의 울타리가 되기를 기대하며 구상한 대안 조직이다.

 

Q. 온라인 노조에 관해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규모가 작고 노조를 만들기 어려운 구조에 있는 직종의 종사자들에게 노동조합은 멀고도 험한 이야기에요. 그들에게 맞는 옷이 무엇일까 하면, 우선 이직은 잦지만 직종은 안 바뀐다는 점, 규모가 작다 보니 오프라인에서 모이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죠. 그리고 사람들의 문제 제기 방식이 집회보다는 굿즈 구매 같은 일상적인 형태로 변하고 있다는 점을 종합해보면, 온라인 노조는 의무와 책임이 낮은 온라인 모임 형태가 될 수밖에 없죠. 조합비를 임금에서 걷는 게 아니라 넷플릭스 구독하듯 한 달에 만 원 내면 회원으로서 업종을 바꾸는 캠페인을 같이 하거나 본인이 겪은 일을 상담받고 솔루션을 받는 일들을 할 수 있죠. 그리고 자체적으로 집행부, 지도부 등 모임 직위도 선출해보고 노조 설립 필증도 내서 사회적으로 공인된 단체로서 사용자 단체와 교섭도 할 수 있기를 꿈꾸고 있어요.”

 

실제로 방송계 노동자들이 모인 ‘방송계 갑질119’ 오픈채팅방은 노조 설립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채팅방 내에서 임금 대신 상품권을 지급하는 상품권 페이를 비롯해 각종 문제 제기가 터져 나오자 노조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직장갑질119는 오프라인 모임을 주선해 교류의 물꼬를 트는 등 윤활유 역할을 했다. 이후 방송계 갑질119는 1년 6개월간 활동하며 방송계의 부조리한 관행을 폭로하고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의 모태가 되었다.

 

Q. 앞으로 온라인 노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거는 제가 얘기할 건 아닌 듯해요. 저희가 함께하기는 하지만 윤활유 역할일 뿐이지, 노조는 노조 구성원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직장갑질119가 짜놓은 플랫폼과 사업 계획에 맞춰서 운영되는 모임을 온라인 노조라 부를 수 있을까요? 저희가 온라인 노조를 무엇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그건 직장갑질119의 조직이지 온라인 모임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이 사람들의 의지와 욕구, 욕망이 반영되어야 하고 저희는 그걸 위해 판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는 거죠.”

 

오진호 활동가는 직장갑질119가 “노조 밖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창구이자 새로운 노동운동을 구상하는 실험소로서의 모습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처지의 노동자들이 함께 문제에 맞서는 새로운 역동성, 그 힘은 결국 일터 곳곳에서의 변화가 있어야 완성될 수 있다. 우리 누구도 불행해지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기억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작은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돌고 돌아 뻔한 해결책으로 되돌아가는 건 아닌가 싶겠지만 그럼에도 답은 정해져 있다. 노동 일상의 변화가 함께 이뤄지지 않는다면 촘촘한 법제는 번거로운 규제로, 새로운 노동조직은 먼 이야기로 느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시민이 누려야 마땅한 민주주의를 직장에서도 똑같이 실현하는 것, 직장 내 민주주의는 결코 낯선 개념이 아니다. 작은 사업장이 많고 이직률이 높아 노조가 만들어지기 어려운 IT산업에서도 온라인 노조가 슬기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얼마나 지속 가능한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기존 노조와의 차별점은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 의문도 남지만, 이러한 물음들 역시 건강한 노동운동 실험의 동력으로 소화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사진을 포함하여 본 글의 전체 또는 일부를 구로노동자조사그룹의 허가 없이 활용, 유포할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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