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공단을 바꾸기 위한 

한국사회의 경제, 노동, 정치적 이슈를 다룹니다."

"구로공단을 바꾸기 위한 한국사회의 경제, 노동, 정치적 이슈를 다룹니다."

2017-04-06 16:5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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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702091836001&code=920501#csidxe66d6d2883a2a51b116b5d424fe934a


갈림길에 선 한국 게임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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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뉴멕시코 사막의 쓰레기 매립지에서 수많은 게임 패키지가 발굴됐다. 패키지에는 1982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포스터가 그려져 있었고 상단에는 ‘아타리’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1983년 미국의 게임사 아타리가 실패한 게임 ‘E T’를 어딘가에 매립했다는 소문이 확인된 순간이었다. 

1980년대 초반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던 북미 게임업계의 수익률이 대폭 하락한 사태를 ‘아타리 쇼크’라 부른다. ‘질 낮은’ 게임이 난립하면서 이용자의 흥미가 감소했고, 게임 판매량도 급감했다. 아타리는 결국 수백만장의 재고를 땅속에 묻었다. 

한국 게임업계에도 ‘아타리 쇼크’가 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2015년에 오웬 마호니 넥슨 대표는 “지금 게임업계에는 과거 ‘아타리 쇼크’ 때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상업적인 성공에만 집중하면 게임의 질은 점점 떨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의 상황과 아타리 쇼크 당시 미국 게임업계의 상황은 분명 다르지만, 닮은 점이 많다. 수익성에만 초점을 맞추고 게임산업 노동자들의 ‘살인적 노동’에만 의지한 차별성 없는 게임이 쏟아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참신하고 창의적인 아이템 개발보다는 될 만한 게임을 남들보다 빨리 베끼는 ‘속도 경쟁’이 지금 한국 게임산업의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수익 중심의 게임 개발이 가장 큰 문제다. 1977년 아타리가 게임팩을 바꿔 끼울 수 있는 가정용 게임기를 개발하며 이용자들은 다양한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일단 출시만 되면 상품성이 없는 게임도 날개 돋친 듯 팔리면서 인형을 만들던 회사까지 게임 개발에 나서는 등 경쟁이 치열해졌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수익이 제일의 가치가 되면서,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도 비슷비슷한 게임들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유행에 따라 2013~2014년에는 수집형 역할수행게임(RPG)들이 주로 출시됐고, 2015년에는 액션 RPG들이 주류를 이뤘다. 조작이 단순한 모바일 게임 특성상 플레이 방식과 콘텐츠에는 차별성이 거의 없다. 현재 국내 매출 순위 50위권 모바일게임 중 RPG 게임은 29편으로, 다른 국가에 비해 다양성이 떨어진다. 한 게임업계 개발자는 “독창적인 게임을 준비해서 들고 가도 회사에서는 돈이 되는지 증명하라고만 한다. 기존에 없는 게임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라며 “업계가 레드오션이 될수록 독창성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데 개발 기간을 짧게 축약해서 한발 앞서 출시하는 것으로만 승부를 보려는 풍조가 업계 전반에 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속도전에 치중하며 노동조건이 악화되는 상황도 닮았다. 아타리는 1982년 개봉한 영화 를 그해 크리스마스에 맞춰 출시하기 위해 무리하게 개발 기간을 단축했다. 당시 13개월 동안 쉬지 않고 게임을 만든 아타리 개발자들은 ‘E T’ 게임 제작에 투입돼 단 5주 만에 게임을 완성했다. 이전에도 아타리에서는 무리한 개발 일정에 불만을 품은 개발자들이 퇴사하는 경우가 있었다. 한국의 게임사들이 노동자의 살인적 노동에 기대 무리한 일정으로 게임을 추진하는 상황과 유사하다.

게임의 질적 차별화를 도모하기보다는 지적재산권(IP) 확보에 열을 올리는 상황도 닮은꼴이다. 북미 게임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확실한 흥행카드가 필요해진 아타리는 ‘E T’ IP 확보를 위해 2500만달러를 지불했다. 국내 대형 게임사들도 경쟁이 치열해지자 IP 확보에 치중하고 있다. 엔씨소프트, 넷마블, 넥슨, 위메이드 등 대형 게임사들은 올해 1편 이상의 IP 기반 신작 출시를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게임업계 퇴사자는 “창의적인 스토리를 만들 역량이 안되니 IP를 사와서 기존 게임에 입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게임업계가 속도전과 IP 확보에 열을 올리면서 자본력을 갖춘 게임사들만 성공을 낳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855개 국내 게임제작·배급업체를 대상으로 2015년 매출 규모를 조사한 결과, 매출이 1억원 미만인 게임사가 전체의 8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대다수의 고용은 중소 게임사가 담당하고 있다. 사회진보연대 노동운동연구소의 보고서를 보면 100인 미만 사업장이 산업 전체 고용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실장은 “영세업체의 경우 잦은 파산과 이로 인한 임금체불이 많아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이 다른 산업에 비해 더 심하다”고 말했다. 

▶아타리 쇼크 

1983년 판매 경쟁의 과열로 한창 성장하던 북미 비디오 게임 업계의 수익률이 폭락한 위기 사태를 말한다. 1977년 비디오 게임 회사 아타리가 게임 팩을 넣어 즐길 수 있는 가정용 게임기를 만든 이후 미국의 게임 시장은 급격히 확대됐다. 게임의 성공이 이어지자 완성도와 관계없이 높은 수익이 나면서 질 낮은 게임들이 대량 출시되기 시작했고, 결국 소비자들은 게임에 점차 흥미를 잃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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